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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길을 찾아 나서는 동료들 (수학 분과)

온전한 것을 본다

세심한 손길로 만져보고

부드러운 눈길로 어루만진다.

그 안에 무엇이 있든

나의 생각은 이미 그 안에서 들썩인다.

 

이제 그 문이 열려졌다.

나는 그 안에서

인간과 우주의 비밀을 찾아낸다.

 

저는 올해로 3년 차인 경상도에서 유일한 발도르프 학교 수학 교사입니다. 전국 곳곳에 발도르프 학교가 있지만 그중 12년제로 상급과정이 있는 학교, 그곳의 수학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참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을 구르며 달리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생님이 혼자서 공부하고 수업하느라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전문과목의 경우 각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연구하며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자료를 찾고 수많은 책을 뒤지며 공부하고 수업을 꾸려나갔는데 올해는 그것을 함께 나눌 동료들이 생겼습니다.

이번 학교연합 여름 연수에서 수학 분과모임은 상급과정 수학과목의 전체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9학년의 기하학 수업을 나누었습니다. 상급과정을 이제 막 세워가는 학교도 있었고, 상급과정이 이제 조금 자리를 잡은 학교도 있었고, 더 긴 시간 정리된 커리큘럼을 가진 학교들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학년별로 1년에 2번의 에포크가 있고 매주 수학 연습 시간이 있습니다. 주로 9학년 때는 화법기하학, 원뿔곡선, 실수체계, 순열과 조합 등을 다루고, 10학년 때는 삼각비, 지수, 로그, 투시기하 등을 다루며, 11학년 때는 해석기하와 사영기하, 12학년 때는 미적분, 통계 등을 수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수 파트로 n차 방정식과 복소수, 함수, 수열 등은 학급이나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희들은 이것을 나누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국의 발도르프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같은 것을 함께 배우는 것에 대한 의미도 있지만 그것을 꼭 맞추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상황과 각 학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리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수학 분과에서 지금 나누고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나누고 공부해나가는 시간을 거친다면 전국에 있는 우리 아이들은 같은 공부를 같은 시기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전문적이고 풍성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겠지요. 또 학교별로 차이가 나는 교육 환경이 점점 맞춰질 거라는 기대 또한 갖게 하였습니다.

 

이후에는 9학년의 기하학 수업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여름 연수 이후에 10학년 기하학도 함께 공부하였는데, 화법기하학부터 투시기하학으로 훑어가는 과정에서 이것이 사영기하학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화법기하학이란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그리는 것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기 위한 화가와 설계사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렇게 원근법 역시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평면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면 10학년 때는 그렇게 보이는 것의 실제 거리와 높이를 측량합니다. 그리고 11학년이 되면 우리 사는 동네와 지구를 넘어서 무한한 공간을 사고하게 되고, 평면에서의 수학인 유클리드기하에서 3차원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올해 1학기 사영기하 수업을 처음 하였을 때 혼자서 끙끙대며 열심히 공부해온 라 이것들이 쭉 연결되고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형태그리기부터 사영기하학까지, 1학년부터 제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상급 아이들까지의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게 되어 발도르프 교육과정이 참 유기적으로 잘 짜여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여름 연수에서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2학기 수업을 새롭게 구성하고 펼쳐보았는데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달랐습니다. 준비되어 있고 확신을 가진 교사의 모습과 태도에서 아이들은 신뢰의 눈빛을 보냈고, 수학의 진리 속을 깊게 탐험하는 모습이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에포크를 마친 9학년들은 수학으로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모든 수학 공식은 단순이 문자로 표현된 식이 아닌 그 안에 본질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도미노처럼 연결되는 수학이 경이롭고 황홀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풍성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고, 전국 각지의 동료들이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앞으로 수학 분과에서는 지금처럼 학년별로 교육과정을 나누는 시간에서 부족한 파를 함께 더 공부하는 시간으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기존의 수업 방식과 내용을 한 단계 성숙시켜 깊이 있는 내용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더 다채로운 수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지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하는 수업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도움을 줄지, 그 시기에 그 수업이 왜 필요한 것인지 연구하고 만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저처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 동료들을 위해 번역 작업과 교재 연구를 하거나 주로 다루고 있는 서양의 수학사뿐만 아니라 동양의 수학사도 연구하여 수업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셋이 낫다는 경험을 하는 저는 경험과 자료가 부족한 학교의 교사로서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독일어나 영어로 된 원서를 바탕으로 공부를 해나갈 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고 할까요? 이것들을 잘 만들어서 저도 또 다른 동료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나의 동료들에게 특히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있는 선배 교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한가희 부산발도르프학교 수학교사 nicehg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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